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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한시대 풍미한 농구감독서 경영자 변신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

지면 A17
문경은·서장훈 키워낸 이 남자…중국 건너가 CEO로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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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호령했던 농구 감독이 경영자가 돼 돌아왔다. 농구 코트에서 소리치던 그가 회사 점퍼를 입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낯설다. 용접봉을 들고 공장 얘기를 하는 모습은 더 어색하기만 하다. 서장훈, 우지원 등 농구 스타를 키워낸 연세대학교 농구 감독에서 경영자로 변신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64)을 지난달 서울 충무로 고려용접봉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문경은, 이상민, 김훈, 서장훈, 우지원 등 아이돌 못지않은 농구 스타를 키워낸 그는 혹독한 훈련과 뛰어난 전술로 삼성, 현대 등을 제치고 연세대 농구팀을 1993~19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학팀 최초 우승이었다. 이후 두 번 더 우승을 거머쥐며 그는 전설의 농구 감독이 됐다.

그러던 그가 돌연 2009년 농구 코트를 떠났다. 전자랜드 농구 감독 시절 잘 알고 지내던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의 제안으로 중국 다롄 공장장을 거쳐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최 부회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끈기로 STX 다롄조선소를 판매처로 개척해 중국 용접봉 판매를 1.5배 늘렸다.

서른한 살 젊은 나이에 연세대 농구 감독을 맡아 농구밖에 모르던 그가 어떻게 3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코끼리표' 용접봉 회사의 부회장이 됐는지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구감독에서 경영자가 됐다.

▷2006년 동국대학교 농구 감독을 하고 있을 때 학교 선배 소개로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을 알게 됐다. 당시 전자랜드 농구단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홍 회장 요청으로 분석 보고서를 써낸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됐다. 당시 홍 회장의 동생인 홍봉철 씨가 전자랜드 구단주를 맡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전자랜드 감독이 됐고 그때 내가 선수 관리하는 모습을 좋게 봤던 것 같다. 2009년 홍 회장이 '우리 회사 공장장을 하면 좋겠다'며 고려용접봉 중국 다롄 법인장 자리를 제안했다. 코끼리표 용접봉으로 잘 알려진 고려용접봉은 1964년 설립된 회사로 용접 재료를 만들어 파는 회사다. 한국 공장 이외에도 중국 미국 말레이시아 등지에 공장을 두고 1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분야가 달라 망설였을 것 같다.

▷고민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인들은 감독을 오래 했으니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했고, 아내도 승부의 세계에서 너무 힘들었으니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해본 적도 있었고, 중국 말은 못하지만 고려용접봉 맨파워가 좋다고 들었다. 중국은 농구가 국기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2009년 11월 가족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4년 반 중국 공장장을 거쳐 2013년부터 영업 총책임자(부사장)로 일하다 보니 어느덧 부회장이 됐다.

―홍 회장이 본인의 어떤 점을 눈여겨본 것 같나.

▷홍 회장과 저녁을 다 함께 먹고 숙소로 가려던 참이었다. 숙소가 있는 인천으로 가려고 하는데 홍 회장이 '집이 연희동인데 왜 인천으로 가냐'고 묻더라. '숙소가 인천이니까 인천으로 간다'고 대답했는데 그때 홍 회장이 놀란 것 같다. 가정도 있고 아이들도 집에 있는데 서울에서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게 이상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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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언어는 안 통했지만 생활은 좋았다. 오전이나 오후에 한 시간씩 시간을 내 중국어를 공부했다. 처음엔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았다. 대신 이거 하면 좋지 않을까, 저거 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다. 직원들이 동의하면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계속 지켜보다가 '내가 책임질 테니 해보자'고 했다. 4년 반 동안 중국 용접사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하는 등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노력한 끝에 STX 다롄조선소를 판매처로 개척했다. 중국 용접봉 판매가 1.5배 늘어났다.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나.

▷농구하는 사람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 좁은 공간에서 한 팀당 5명씩 10명이 싸우는 거다. 그때그때 상황이 계속 변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진다. 느닷없이 적응하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365일 훈련을 하는 거다. 그래서인지 유별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농구 감독 출신 경영인이라 좋은 점은.

▷나는 마이너스 될 게 없다. 내가 잘못하면 운동하던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주고, 내가 잘하면 '운동했던 사람이 어떻게 잘했지?'라고 생각해줬다. 협력사를 만날 때 나를 장사꾼으로 보기보다는 전 농구 감독으로 호감을 가지고 대해준다. 감독 시절 유명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수 있었던 것은 연세대라는 배경이 작용했고, 고려용접봉에서 영업할 때는 농구 감독 출신이라는 이력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준 것 같다. 운이 좋았다.

―어떻게 연세대 농구 감독이 됐나.

▷휘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농구팀에 들어갔지만 (실력이 뛰어난 동기들에게 밀려) 벤치에 많이 앉아 있었다. 그래도 스스로 농구를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무지하게 연습했다. 대학교 4학년 때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노스캐롤라이나 팀에서 농구를 배운 도널드 휴스턴이 연세대 농구팀을 찾았다. 영어가 가능했던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사전을 옆에 끼고 통역을 맡으며 미국 선진 농구를 배웠다. 그것이 계기가 돼 방학 때마다 후배들 연습하는 것을 봐주게 됐다.

대학 졸업 후 현대전자 농구단 선수로 뛰다가 은퇴를 했고, 현대건설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다 퇴사했다. 이후 고등학교 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교인 연세대 농구부에 인사하러 갔다가 '곧 대회가 열리는데 시간 있으면 학생들 훈련 좀 봐달라'는 말을 듣고 임시 감독직을 맡은 것이 17년 감독 생활의 시작이었다.

―현대건설 직원으로 이라크 파견까지 다녀오는 등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열려 있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고 판단이 서면 뭐든 한다. 딱 한 번, 여자팀 농구 감독은 거절해봤다. 여자 선수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킬 자신이 없었다.

―감독 시절 스카우트 실력이 상당했다.

▷내가 운동을 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선수의 능력을 잘 봤다. 내 눈만 믿지는 않고 주변의 평가도 들었다. 연세대 감독 시절 방학 때마다 보름씩 전주, 목포, 마산, 부산 등 매년 투어를 했다. 고등학교 선수들과 연습경기도 해보고 유망 선수들 정보도 입수했다. 보름 동안 투어를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 힘들지만 그렇게 투자하지 않으면 좋은 선수를 얻을 수 없다. 그때 본 선수가 우리 팀으로 안 오더라도 상대방의 장단점을 잘 알게 돼 대응하기 좋았다.

―스카우트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1987년 마산에서 정재근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일이다. 같이 저녁도 먹고 하면서 연세대로 와야 할 것 아니냐고 제안했고 본인도 승낙했다. 그런데 도장 찍는 날 마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박한 당시 고려대 감독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급히 내려가니 고려대와 얘기가 끝났다고 아무도 나를 안 만나줬다. 시간이 늦어 갈 데도 없고 해서 마산 정재근 선수 집으로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재근이 방에서 같이 잠을 자며 나하고 약속했지 않냐고 잘 설득했다. 다음날 아침밥 먹으면서 재근이가 '어머니 저 연대 가겠습니다'고 하더라. 당장 스카우트비를 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 서울 선배한테 전화해 송금 좀 해달라고 해 겨우 돈을 줬다.

―리더십 비결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다. 열심히 하다 보니 성적이 좋게 나왔고, 그걸 보고 리더십이 좋다고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감독이 열심히 하면 선수, 코치들도 열심히 하지 않겠나.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25시간을 팀과 관련된 일을 했을 뿐이다.

―농구 감독과 기업 경영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결국 사람 관계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농구 감독과 기업 경영자 모두 사람을 잘 써야 한다. 좋은 선수가 많으면 알아서 이겨주니 감독으로선 좋고, 경영도 좋은 인재가 일을 잘하면 책임자가 편한 것 아닌가. 좋은 인재를 바탕으로 서로 신뢰하며 지내는 게 중요하다.

차이점은 다양성인 것 같다. 농구는 이겨야 한다는 목표가 같기 때문에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시켜도 극복해내지만, 경영은 사람 계층이 더 다양해서 좀 어렵다. 일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정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진급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펙을 쌓아 이직하려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 기준을 정하면 잡음이 있을 수 있다. 농구는 선수들의 연령도, 문화도 비슷한데 기업은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세대 간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스포츠는 이번에 지면 다음에 이기면 되는데 회사는 망하면 끝이지 않나. 중압감은 기업 경영 쪽이 더 세다.

―다음 목표는.

▷사업적으로는 고려용접봉이 글로벌 순위로 따지면 10위 내외인데 5위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은퇴 후 농구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농구 발전에 봉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예전엔 쟁취하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베푸는 게 훨씬 기분 좋더라.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도자는 선수들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하는 게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지 말고, 못한다고 기회를 박탈하면 안 된다. 반면 선수들은 무작정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 나는 선수 은퇴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내가 (농구를)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He is…

1955년 서울생이다.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다. 연세대 농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벤치에 앉아 있던 날이 많았다. 1977년부터 5년간 현대전자 농구단 선수로 뛰다가 은퇴 후 현대건설 통합구매실에서 일하다 퇴사했다. 이후 고등학교 교사를 준비하면서 모교인 연세대 농구부에 인사하러 갔다가 임시 감독직을 맡은 것이 감독직의 시작이었다. 연세대, 현대모비스, 전자랜드 농구 감독을 거쳐 2009년 고려용접봉 중국법인장이 됐다. 2017년부터는 3000억원 매출의 고려용접봉 부회장을 맡고 있다.

[권한울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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