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 거장 하종현 개인전
제2의 고향 부산에서 첫 전시
"색도 안 쓰는 게 화가냐
염라대왕이 꾸중할까 변신 결심"
제2의 고향 부산에서 첫 전시
"색도 안 쓰는 게 화가냐
염라대왕이 꾸중할까 변신 결심"
2015년 국제갤러리 서울점 개인전에서 '그을림(smoke)' 기법을 비롯해 기왓장, 벽돌, 흙, 억새풀 등 자연의 색을 연상케 하는 '접합' 신작을 처음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국내 최초로 작가가 근래 새롭게 도입한 적색과 청색, 다홍색의 대형 크기 '접합' 연작을 공개한다.
연한 다홍색과 짙은 다홍색, 두 색으로 보이는 '접합 18-12'는 실상은 물감을 한 색만 썼다. 마대의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 캔버스를 붉게 물들이고, 그을음을 냈더니 다른 색상으로 보인 것이다. 전면으로 배어난 물감은 다시 붓으로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렸다. 쏟아지는 폭포처럼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 거대한 작품 앞에서 그는 "물감을 섞을 때도 매번 다르고, 밀어내고 그을음을 낼 때도 색이 매번 달라진다. 예술은 똑같으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내 마음대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 예술이다"고 설명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는 고향에서 부산으로 왔다. 온갖 피란민이 다 몰려와 끼니도 굶으며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다. 사촌의 가게에서 새벽마다 자갈치시장에서 물건을 떼 와 장사를 했는데 대성할 테니 같이 일하자는 말까지 들었다. 다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려고 서울로 왔다. 그는 "온갖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하던 그 시절이 내 자산이다. 그 고생이 바탕이 돼서 오늘이 있는 거다"고 했다.
미술대학에 왔지만 물감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데생과 크로키 등을 다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미군이 중량미를 담던 마대를 구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데생이나 크로키나 다른 사람이 다 하는데, 나도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다 버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단색화가 오늘의 화려한 색을 입게 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07년이었다. 내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죄다 무채색이더라. 나중에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가면 '몇 년 그렸냐' '너처럼 색깔도 안 쓰는 사람이 화가냐'고 물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색을 많이 쓰겠다고 생각했다. 이건희 회장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하지 않았나. 사업가도 저런데 내가 가만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단청의 색, 도자기의 색, 고색창연한 기왓장의 색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는 다른 방식을 시도한 신작이 여러 점 걸었다. 캔버스의 앞으로 밀어낸 물감을 다시 뒤로 밀어낸 '접합 18-52'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매번 똑같은 생각을 하면 되겠나. 자기 색깔을 자기가 끄집어내야지. 그림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각자가 알아서 나아가는 거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거다"고 말했다.
하종현은 9월 밀라노 카디 갤러리, 2020년 2월 런던 알민레쉬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준비하고 있다. 노장이 붓을 내려놓을 날은 아직 멀어 보였다.
[부산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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